영어공화국
이성 2009/03/02 16:42
0.
나고 자란 나라나 지역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 능력 못지않게 외국어도 한 두 개쯤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인재’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변함없는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좁아질뿐더러 그만큼 서로의 영향관계가 더할 수 없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어 구사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많은 언어 중에 유독 영어가 선택된 이유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 가진 막강한 힘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로의 언어가 다를 때 어느 한 편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나 지역 출신이 아니더라도 중간 언어로서 선택된다. 또 전 세계에 서비스 되고 있는 수많은 웹사이트와 지식의 확장을 꾀하는 유명 저널의 절대다수는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영어는 전 세계인과 호흡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다. 만약 미국이 지금과 같은 독주를 지속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무너지더라도 언어 변화가 가진 보수성으로 인해 영어는 쉽게 그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 특히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던 ‘아륀지’ 사건이 보여주듯 영어를 잘한다, 잘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선 문제가 있고, 그 문제의 심각성은 ‘아륀지’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더라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1.
사실 순진하게 생각하면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었던 그분이 말하려는 바는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자는 뜻일 것이다. 정말 텍스트 그대로라면 말이다. 그 정도라면 누가 탓할 수 있을까? ‘국영수’라고도 하고 ‘언수외’라고도 하면서 10년 넘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만, 또 국어를 뒤로 돌릴 수 없는 처지란 것을 감안하면 수학과 함께 1등, 2등에 해당하는 중요 과목으로 대접 받은 게 오래되었고 요즘에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규 교과과정에 편성되어 가르치고 배우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외국인을 만났을 때는 쉽게 영어가 나오지 않는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한 뒤 영어를 공부할 별다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문법은 저편에 두고, 저급한 수준의 단어 조합 정도밖에는 못한다. 의사소통이라고 할 게 없다. 급한 말만 겨우겨우 찾아하는 수준이다. 외국인을 만나야 한다면, 그리고 만난다면 삐질삐질 땀을 흘릴 게 뻔하다. 영어가 필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보다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대학을 다닐 때는 물론이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영어 회화 능력을 키우거나 영어 관련 능력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새벽부터 영어 학원의 문을 연다.
열거할 사항은 수없이 많다. 몇 년 전 이야기지만 영어공용어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r/발음과 /l/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라며 아이들 혀 아래의 설소대를 잘라내는 수술이 성행한 끔찍한 일은 가히 엽기적이지만 현실이다. 지자체들이 앞을 다투어 영어마을을 짓고 자치단체장들은 재선과 국회로의 진출을 위한 업적으로, 지역 주민은 아파트값 인상으로 그 이익을 챙겨가는 일도 현실이다. 조기 유학과 기러기아빠의 문제는 더 관계가 복잡하지만 그 속에 영어 교육의 문제도 똬리를 틀고 있음은 분명하다.
2.
상황이 이러하니 영어 교육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곧장 보다 많은 영어 교육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게 된다. 물론 영어집중교육, 원어민 교사 충원, 영어 교사들의 연수 강화 등의 방법론들도 다양하게 제기되고 적용된다. 문제는 이토록 영어교육에 애쓰는 배경과 구조다. 모두가 ‘글로벌 인재’가 될 필요가 없고 글로벌 인재는 영어 구사 능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필요한 영어 구사 능력의 수준이란 게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이토록 영어에 열을 올려 가히 ‘영어공화국’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또는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결과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내가 얻은 결론, 염려는 이런 영어공화국 현상은 결국 학력에 따른 차별 구조가 더 단단해 질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학력 수준, 즉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경제력과 직업 선택의 폭이 상당부분 정해지는 구조는 부정하고 싶어도 잘 부정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다. 서울대가 아무리 지역균형할당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하고 또 다른 대학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전형을 실시한다고 해도 극복되지 않는다. 몇몇 극소수 그 틈을 비집고 성공한 모델들이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런 모델들은 ‘이것 봐라, 너희가 열심히 안해서 그런 것이지 제도와 구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게 징징거릴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워라’고 말하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필 영어인 까닭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수학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통해 뚜렷하게 등급을 나눌 수 있고,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단원을 강조하고 우대함으로써 점점 더 그렇게 제도화되고 있다. 예전 같이 ‘미적분 배워 어디에 써먹냐’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영어는 어지간하면 수학처럼 하겠지만 오히려 토익이나 텝스와 같은 자격 시험이나 능력 시험을 통해 객관화된 성적을 요구하는 편이 이모저모 합리적으로 보이는 편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대신 그 정도는 보통 사람들도 이 악물고 노력하면 되는 선이고 그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영어 능력을 세상과 사회가 필요로 한다는 명분으로-미국이 지배하는 글로벌한 세상이니까-정말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잘할 수 있는 조건과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 예를 들면 장기어학연수와 조기유학을 다녀온 사람들과 국제학교와 특목고 출신에게 유리한 전형과 선발 방식을 유지하거나 개발함으로써 계층별 차별 구조에서 상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 지위를 내놓거나 확대할 필요가 없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영어 교육 강화는 ‘학교에서 이만큼이나 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동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의료계와 법조계의 전문 인력이 되기 위해서는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 졸업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지적도 있다. 없는 사람은 물론, 적당히 돈이 있는 사람들도 따라가기 힘든 수준으로 해 놓으면 따라가려고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셈이다.
3.
이제 겨우 네 살인 나의 둘째 아이는 아내가 여섯 살인 첫째 아이한테 읽어주는 책을 같이 봐서 그런지 부모가 생각하기엔 몰라도 될 만한 것들을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알파벳도 그런 경우다. A는 apple, B는 bus 이렇게 이어지는 작은 단어장과 ABC 노래, 그리고 알파벳 자석 장난감을 가지고 놀더니 알파벳을 모두 알아버렸다. 그게 재미있는지 첫째 아이는 아직 혼동하는 소문자도 먼저 알아버렸다. 그리곤 요즘은 영어 단어를 알려고 부쩍 흥미를 보인다. 자연히 욕심이 생겼다. 네 살부터 영어를 해야 한다는 학습지의 전단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도 안되어 보이는 남매가 영어로 대화하는 TV 광고를 보면서 욕심이 더 커졌다. 첫째 아이는 보내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은 ‘뭔가’를 해야하나하는 혼란과 불안도 같이 왔다. 하지만 아내와 나의 상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따라갈 필요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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