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교육과 미래
0.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실로 대단한 것들이다. 동물에게는 먹잇감과 짝짓기를 할 대상일 테며 인간에게는 부와 명예 등인데, 그것을 얻기 위해 서로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전체 집단이 성장,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식물의 진화는 승리한 개체들의 생존과 성장 과정이며 곧장 발달, 발전 과정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쟁’이라는 방법을 제외하고 다른 방법을 통한 성장, 발전을 기획하거나 상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경쟁을 기획할 때 잊지 말고 상기해야 하는 속성들, 곧 경쟁의 전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더 열심히 한 사람에게는 그것에 상응하는 결과가 발생하며 노력한 만큼, 때론 그 이상의 대가가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 바꾸어 얘기하면 누군가에는 보상이 적게 돌아간다는 전제이며 두 번째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상태, 환경이라는 전제다. 마지막 것은 보다 본질적인 것인데 우리가 얻고자 하는 부나 명예, 평판 등을 누구나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 한다는 전제다.
1.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응원하며 아사다 마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1, 2등을 서로 겨루는 두 선수가 서로를 견제하며 자신의 점프와 회전, 턴 등의 기술과 그에 상응하는 연기력을 향상하여 보다 높은 수준의 피겨스케이팅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프로 골퍼 양용은에 대해 주목하는 이유도 그가 최고의 선수인 타이거 우즈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경쟁하여 우승한 점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스스로와의 싸움이 더 힘들다고 하는 이유도 경쟁자 없이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이글의 논점에 맞추어 중고등학교 교육 부분에 한정지어보면 학생 개개인 사이의 경쟁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 또 교사와 교사 사이의 경쟁, 학교와 학교 사이의 경쟁도 있다. 좀 더 구도를 바꾸면 학교와 학원, 공교육와 사교육 사이의 경쟁도 불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사교육 안에서는 경쟁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학생들은 옆에서 공부하는 친구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아 학업 성취도를 높여야 한다. 적절한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성적이 비슷한 그룹을 따로 만들기도 한다. 학교 안에서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존재하며 학교와 학교 사이에는 특목고와 일반고의 구분이 엄연하다. 기준을 위해서는 ‘평가’가 필요하기에 학생들은 쉴 사이 없이 시험을 치르며 교사평가도 곧 시행될 기세다. 일반고와 특목고 사이의 평가는 이미 답이 나온 상태이며 대입 진학률, 특히 명문대 진학률과 수능 성적 공개 등의 추가적인 방식을 통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경쟁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가지려고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보다 높은 수준의 학업 성취도와 그에 상응하는 우수한 인재 양성, 그리고 그런 인재들이 만들어낼 선진 한국에 대한 기대일까?
2.
문제는 앞에서 지적한 경쟁의 전제들을 하나씩 짚어보는 것으로 잡아낼 수 있다. 우선 위와 같이 경쟁교육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그런 경쟁을 통해 얻는, 얻고자하는 보상 또는 목적의 불분명성이다. 두 번째는 그런 경쟁의 전제가 되는 공평한 기회의 부여, 즉 교육기회의 균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가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점이다. 마지막은 경쟁교육 이외의 다른 방법을 통한 인재 양성의 노력 여부다.
학생들 스스로 학업 능력에 대한 경쟁심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우선 공부부터 해야한다.’는 흔하고 그만큼 지당해 보이는 이 말은 경쟁심이 보상에 대한 기대에서 충동되는 점을 적절히 이용한 논리다. 하고 싶은 일, 자신의 적성에 따른 직업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인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에겐 너무나도 적절한 논리다. 시쳇말로 바꾸면 ‘닥치고 공부’다. 대학에 진학할 때 학과, 전공을 정하는 그 순간에도, 또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스스로의 적성에 따른 ‘하고 싶은 일과 그에 따른 일’을 찾지 못한다. 심지어 없거나 나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직업의 귀천과 학벌은 생각보다 단단히 존재하며 스스로도 그 속에 이미 융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닥치고 공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자, 묻는다. 학생들은 왜 스스로의 학업 능력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가?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하는 일이 우선 중요하다면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부할 수 있고, 그런 좋은 환경이 마련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가? 가난했지만 서울대에 진학하여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을 들은 내 친구는 자기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대학갈 때’가 요즘 같다면 자신은 서울대는커녕 이른바 ‘인서울’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외고 폐지를 얘기하면서 자신과 총리의 ‘개천에서 용난’ 사례를 들기도 했다. 그는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방향에서 접근하였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더욱 강성해 지고 있는 경쟁교육 체제 아래에서의 외고 폐지나 축소가 사교육 수요를 막을 수 있다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꼭 경제력이 기준이 아니어도 우리에게 교육기회의 부여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모든 것이 경제력에 귀결되는 것은 맞지만 말이다.
셋째, 경쟁이라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정말 없는가라는 점이다. 또는 경쟁교육을 미진함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이나 해봤는가라는 점이다. 나아가 경쟁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학업 능력이 과연 우수한 인재임을 증명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학업 능력이 경쟁을 통해 상당히 효율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경쟁의 방식만이 유효한 가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또 미래는 아니 현재는 남과 다른 창의성을 갖춘 인재,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인재,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오로지 학업 능력, 그것도 주요 과목의 성취 능력만을 우선하는 현재의 경쟁교육 체제 안에서 길러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본질적으로는 경쟁을 통한 보상을 그 승리자가 더 많이, 때론 과독점하는 게 과연 좋은가라는 부분도 생각해 봐야 한다.
3.
우리나라의 지극히 낮은 출산율의 문제를 풀기위해 미래기획위원회에서는 취학연령을 낮추는 방법을 제안하고 공론화 시켰다. “저출산? 다른 것 없습니다. 애를 가지는 행복보다 애 키우는 비용이 크니까 문제죠.”라고 말하는 위원장의 말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느끼는 행복의 가치를 어떻게 셈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비용’이 교육에도 그렇게 쉽게 습합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자녀를 키우는 데 필요한 비용이 경쟁교육의 강화 아래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참담하다. 경제학자 출신의 그에게는 모든 것이 비용으로 금방 환치될 수 있는지 모르나, 우리가 기획하는 미래가 먹잇감이나 짝짓기 대상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으르렁 거리는 살벌한 정글이 아닌 이상 교육, 경쟁교육에 대한 미래기획이 우선한 뒤에 자녀를 키우는 비용을 따지는 게 순서에 맞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무한경쟁교육이라는 답을 이미 가지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계간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