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성)의 상품화, 그리고 청소년
자본주의는 상품에 기초한 사회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거래를 목적으로 하며 화폐를 통해 교환된다. 상품을 만든 사람과 장사를 한 사람, 그리고 그 둘을 이어준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만약 시장에서 판매할 물건이 아니라면 상품이라고 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아주 쉽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떤 물건을 만들고, 유통시키며 판매할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가면 아주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 중에서 몸, 성의 상품화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민감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청소년의 몸, 청소년의 성이 그것에 결합된다면 아주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예를 찾자면 여자 연예인의 몸과 성의 상품화를 들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늘 대중, 특히 청소년의 관심 속에서 ‘소비’되는 대상이기 때문에 아주 직접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연예인의 의상과 노래 가사 등의 선정성 문제는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다. 시상식이나 갖은 행사가 열릴 때 레드 카펫이나 포토 존에서 찍은 여자 연예인의 사진은 깊게 파이거나 훤히 드러낸 부분에 카메라의 초점과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동일하게 맞춰있기 마련이다. 거기에 가수들의 춤과 의상, 노래 가사의 선정성은 국정감사의 소재가 될 정도이며 실제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는 걸그룹의 의상과 가사에 대해 지적이 됐고, 관련 심의 과정을 통해 이제 방송에서 살색은 최대한 감추어지고 민소매 정도에서 그 수위가 조정되고 있기도 하다. 당장 시각적인 부분에서 소비되는 성을 규제한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성, 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그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모양이 썩 반갑지 않다. 더군다나 청소년들이 그 주된 소비층이기에 문제의 정도가 확장되는데 그 역시 제대로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판단력이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성적 욕구를 자극해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기도 하는데, 그것은 마치 ‘꿀벅지’는 선정적인 표현이고 ‘초콜릿 복근’은 그렇지 않다는 말처럼 불완전하기 그지없다. 청소년에게 성은 무엇이며 그것의 상품화에 대한 알람은 어떤 식으로 울려야 할까?
프로이트는 리비도라는 개념을 통해 성적 본능, 혹은 성적 충동에 대해 설명했다. 도덕주의자들의 반발처럼 이성과 자유의지, 도덕을 알고 행하는 인간이 성적 에너지에 침잠된 속성을 가진다는 말은 대단히 위협적이다. 그런 성적 에너지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어느 단계에서 멈춰버리거나 삐뚤어질 경우 그런 신체적 속성이 정신(이성)을 조정한다면 그것은 정신 이상에 의한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성적 욕구가 곧장 성범죄는 아니다. 성적 욕구, 성적 에너지는 인간의 치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정신 활동 영역에 속하는 에너지의 하나라면, 리비도의 정상적인 발달이 요구되는 것이다. 청소년은 그 발달 과정에 있을 뿐이지 어느 순간 폭발하도록 정해진 시한폭탄이 아니다. 하지만 이성교제를 공식적으로 금하고 이성간에 손을 잡고 다니면 벌점이나 다른 형태의 처벌을 주는 학교도 있는 상황은 얼마나 답답한가. 이성교제를 하는 청소년 사이의 입맞춤, 나아가 성행위가 온당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식의 규제가 유치하다는 말이다. 발달은 규제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염려할 수 있고, 해야 하지만 그 염려를 통해 얻은 결론이 무조건 못하게 하는 일이라면 요즘 말로 하면 찌질하다는 말이다. 청소년은 생물학적으로 이미 성인과 다름없다. 생식의 문제에서는 어지간한 어른보다 오히려 더 건강한 상태이다. 신체는 이미 발달을 다 했는데 인간의 긴 보육 기간과 그에 상응하는 긴 교육 기간이 정신의 성숙을 계속적으로 유보하고 있다는데 근본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청소년 시기에 똑바로 성의 문제를 오픈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의 아버지 세대처럼, 또 나의 세대처럼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도 여전히 성은 숨기거나 감추어야 하는 것이고, 그저 못보게,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훈육한다면 도대체 과거에서 한 치도 나아간 게 없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덧붙여 걸그룹에게 짧은 치마를 금하고, 그들의 배꼽을 숨기면 당장의 선정성은 가려질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성의 상품화를 막는 일은 아니다. 노출 수위의 조정이 성 상품화의 본질을 가리면 안된다. 성은 상품이 되어서는 안된다. 소비자가 원하고 그것을 생산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상품이 되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몸(성)의 상품화만은 안된다는 말은 엄격한 도덕주의와 오십 보 백 보 아니냐는 의심을 품어 볼 수도 있다. 19금이면 성이 상품화되어도 괜찮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으로서의 성을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 대상이 ‘인간’이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은 자유와 평등을 기반한 자기 정체성의 실현과 그것에 대한 서로 간의 이해와 존중으로 유지된다. 사람이 책상 위 한 켠에 있는 머그컵과 구별되고 동물원 우리나 밀림의 사는 원숭이와 구별되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문명의 발달과 미래는 그런 구별되는 인간의 존엄이 있기에 가능하다. 상품이 되어 나와 다른 대상이 된 인간과 미래를 함께 만들 수는 없다.
성은 사랑이 전제된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 대한 최고의 배려이며 존엄의 지존이다.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은 그것이 손을 잡는 일이라도, 또는 글로 묘사하기 힘든 온갖 행동이라도 그 아름다움의 차이가 없다. 춘향과 이몽룡의 첫날밤 대목을 매우 노골적으로 노래한 <사랑가>를 들으며 가사가 적나라하다며 불쾌해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찔한 뒷태’니 ‘숨막히는 가슴골’이니 하며 떠들어 대는 찌라시들을 향해 ‘에라이, 퇴’하고 침을 뱉고, 매마르거나 촉촉한 나의 마음을 어루만질 노래를 아이돌에게 짧디 짧은 바지와 몸에 딱 붙는 티를 입혀 부르게 하는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해야 한다. 과장하면 그건 나의 아름다운 사랑과 성을 상품화 시키는 일과 다름없다.
<논>,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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