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24 11:31 이성

설득과 다수결

 

1.

다수결이라는 원칙이 있다. 때론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수결’이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다수결이란 의견이 다른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더 많은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방식이다. 회의라는 자리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네 명이 중국 요리 식당에 갔는데 세 명은 자장면을 먹겠다고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짬뽕을 먹겠다고 하면, 처음 짬뽕을 먹겠다는 사람은 ‘같은 것 시켜야 빨리 나오기’ 때문에 그냥 자장면을 먹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아주 효율적인 선택이다. 또 그깟 짬뽕 한 번, 지금 안 먹어도 별 일은 없다. 하지만 처음에 짬뽕을 먹고 싶었던 그 생각은 너무 쉽게 버려진다. 왜 내가 짬뽕을 먹고 싶었던가? 너무 일상적인 예시지만 우린 그와 같은 경우를 아주 중요한 회의 자리에서도 경험하거나 목격한다. ‘에이, 그냥 너도 자장면 먹어’하는 말을 듣는 경우 말이다.
 
2.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 학급 회장을 뽑고 학급 회의를 하면서 다수결에 대해 가장 실제적으로 알게 되지 않나 싶다. 회장 후보자가 나서거나 추천을 받고나면 소견 발표를 거쳐 투표가 이어진다. 보다 많은 표를 얻은 후보자가 회장이 되고 학급 회의라는 것을 하게 된다. 아주 소소한 일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중요할 수 있는 사안들이 회의 안건에 올라오면 ‘특별한 의사 교환 없이’ 다수결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찬성하는 학생과 반대하는 학생, 또는 제 3의 의견을 가진 학생이 등장하여 때론 열띤 토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 보다는 그냥 거수투표를 통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 또 그 과정에서 의견이 다른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조정하는 경우 보다는 그냥 대립하는 상태에서 투표에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민주주의는 다수결’이기 때문에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투표 후에 이러쿵 저러쿵 따지지 않는다.

국사 시간에 화백회의에 대해 배우면서, 또는 세계사나 윤리 시간에 고대 그리스에 대해 배우면서 만장일치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발전한 그리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상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얻을 뿐 왜 만장일치제도가 있었고 어떻게 만장일치를 이룰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전체 의견이 처음부터 통일되기 힘들더라도 전체가 하나의 의견에 동의하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이 있고 그를 위해 유연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3.

투표를 통해 국회에 과반수 이상의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있다면 법을 새로 만들고, 고칠 때 다른 정당의 의견을 들을 이유는 뭘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이미 총선에서 결정된 과반수의 의석을 통해 4년 동안 국민들을 ‘대의’하면 되지 왜 굳이 공청회를 열고 여론조사를 하고 상임위원회 활동을 할까? 또 왜 시민들은 4년 임기의 국회의원을 뽑아놓고 거리와 광장에 나와 그들에게 시위를 할까? 학급회의의 그것과 절차적으로 형식적으로 다른 게 뭐가 있는 걸까? 최근 우리나라 국회에서 처리한 이른바 ‘미디어법’은 경우 다수당인 여당 의원과 소수당인 야당 의원 사이의 몸싸움과 투표 절차에서의 위법성 사이에서 ‘다수결’로 통과 되었다. 야당은 국회등원을 거부하고 거리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다르게 국회가 운영되고, 야당이 다수결의 원칙을 부정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전체가 하나의 의견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설득이라는 과정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서로간의 유연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청회가 정상적으로 여러차례 시간을 갖고 열려야 하며, 여론도 반영해야 한다. 물론 이번처럼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문, 방송에 관한 법률의 경우에는 더욱 여야의 치밀한 논의와 함께 시민들과의 충분한 의사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4.

작년 어느 대학의 입학을 위한 논술 시험에는 ‘대립하는 상황을 해결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 주제로 다루어졌다. 첫 번째는 설득이고 두 번째는 다수결, 세 번째는 강압이었다. 논제에서는 위 세 가지 해결 방식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을 하나 선택하고 그 근거를 밝힐 것을 요구했고, 또 그 방식의 문제점과 극복 방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해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 또 갈등의 해결 방법으로 ‘강압’이 ‘설득’이나 ‘다수결’보다 우세했던 최근의 여러 사회적, 정치적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강압을 가장 적절하다고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본다면 홍코너는 설득이고 청코너는 다수결이다. 홍코너의 설득 선수는 10라운드 정도되는 장기전에 유리하다. 아니면 라운드 구분없이 누군가 하나 포기할 때까지 싸우는 경기에 유리하다. 그만큼 상당한 양의 에너지와 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기 결과에 대해서는 승패를 떠나 어깨를 걸어준다. 청코너의 다수결 선수는 3라운드 정도의 단기전에 유리하다. 대개 1라운드에서 KO로 끝내는 경우를 즐긴다. 투여된 에너지에 비하여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며 초반에 몰아붙이는 경우가 잦다. 이겼을 때 자만하는 경우가 많고 졌을 때는 소외감에 몸서리친다. 현재까지의 두 선수 사이의 전적은 다수결 선수가 우세하다. 당신은 누구를 응원할 것인가?

 

5.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대화와 타협, 화해와 협력을 얘기한다. 서로 잡아먹으려고 물어뜯지 말고 서로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서로 어깨를 걸고 자기 것을 나누는 게 협력이다. 잘못한 게 있다면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상대의 그 용서를 받는 것이 화해다. 그 속에서 서로간의 유연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대화이고 타협이다. 하지만 짐승의 가면을 쓴 채 한 손에 칼을 들고 어깨동무를 한다면, 거짓 용서를 구한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여전히 얇다면 그것은 야합일 뿐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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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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