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격의 오류

이성 2009/06/15 11:55

인신공격의 오류

 

1.

가지고 있지도 않는 장점을 억지로 끌어내 칭찬을 하거나 있는 것을 과장한다면 그것은 아부라고 부를 수 있고 권장할 사항이 결코 아니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집요하게 긁어 대면서 논의의 본질과 상관없는 변죽을 울려가며 골탕을 먹이는 일 또한 피해야할 일임에 분명하다.

특히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글이나 말일 경우 보다 조심해야 할 일이다. ‘주장’이 아닌 ‘사람’을 문제 삼는 이것을 통상 ‘인신공격의 오류’라고 부르며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대표적인 오류 중의 하나로 꼽는다. 또 상대가 가진 약점을 자꾸 들추고 트집을 잡으며 화제를 끌고 가는 조롱도 온당한 대화 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놀리며 키득거리는 모습은 그 상대방에게 심한 모멸감을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

하지만 지금은 인신공격이나 조롱이 판치는 세상이다. 사람들의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즘의 TV 예능프로그램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어떤 대화의 방식을 사용하는가? MC를 맡고 있는 고정 출연자와 매 주 바뀌는 출연자들끼리 서로 헐뜯고 상대가 혹여나 실수를 하면 빠트리지 않고 찾아 공격한다. 초대 받아 출연한 사람이 없는 프로그램에서는 MC들 서로가 조롱의 대상이 된다. ‘때린 곳을 또 때리기’도 하며 거기에 ‘네편 내편’은 없다. 심지어는 일부러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스스로 ‘비호감’이 되려고 애쓰며, 안티팬을 적극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것을 보고 ‘웃는다’.

물론 바보, 뚱보, 못생긴 얼굴 등을 과장하여 그들의 어리숙하고 못난 언행을 보고 즐긴 일은 오래전부터다. 하지만 그것은 그 연기자가 분장을 하고 있을 때 뿐이다.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 입으면 더 이상 놀림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리얼리티’라는 개념이 새로 자리를 잡으면서 연기자들은 이제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방송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캐릭터를 어느 프로그램에서건 유지한다. 리얼리티를 표방하므로 어디까지가 실재 그 연기자의 캐릭터이고 어디서부터는 ‘설정’인지 구분할 수 없고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문제는 시청자들이 그것을 즐긴다는 점이다. 똑똑하거나 착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던 연기자보다 보통 사람보다 좀 모자르거나 못된 캐릭터의 연기자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식 퀴즈나 체력 테스트 등의 여러 장치들을 동원하여 ‘평균에 못 미친다’, ‘TV를 보고 있는 당신보다 못난 사람’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자기 비하와 폄하, 다른 사람을 향한 비아냥과 막말이 넘치는 방송을 보고 시청자들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인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3.

이른바 '찌라시'라고 불리는 매체 아닌 매체가 있다. 온갖 떠도는 이야기,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추측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증권가에 떠돈다고 하지만 연예인들의 사생활도 단골 손님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를 내기도 한다. 엑스 파일이니 와이 파일이니 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형 신문들도 ‘찌라시 급’ 기사를 싣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자, 특히 정치인들의 공개되지 않는 정보를 소문의 형태로 확장시키는 일도 그들의 장기다. 보통 스캔들이라고 부르는 수준에 머물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과하여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기도 한다.

우리는 최진실의 자살을 두고 여러 가지 원인을 얘기했었다. 갖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겠으나 최진실을 향한 사람들의 무차별적 인신공격이 그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인터넷 게시판의 글과 그 글 아래에 댓글로 올라오는 조롱과 막말에 자존감의 심한 훼손을 경험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지가지 추측을 하는 것까지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사실관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연하게 떠도는 이야기들은 또 다른 소문으로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4.

확인할 수 없다면 더 조심해서 말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은 잊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우리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익숙하게 즐거워하는 방식 그대로 현실에서도 즐거워한다. 아마도 선후를 가리자면 그런 현실을 피디와 작가, 연기자들이 잘 잡아 보여주고 있는 것일 터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로 종결될 수 있다. 우리는 왜 인신공격을 잘 하고, 또 좋아하는가?

인신공격은 비논리적이다. 상대의 논리에 대응할 자기 주장의 근거가 불명확할 때 우리는 ‘당신의 평소 모습을 볼 때’, ‘당신이 예전에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라며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일들을 꺼냄으로써 쟁점을 흐려버린다. 또는 ‘그건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며 작은 차이(작지만 중요한 차이임에도 불구하고)는 무시해 버리려고 한다. 또는 ‘입만 살아가지고’라며 자신의 비논리성은 시인하지 않고 상대의 실천과정과 그 결과를 무시해 버린다. 인신공격을 통해 유발되는 웃음은 조롱이다. 남을 깔봄으로써 얻어낸 웃음이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거울을 돌리지는 않는다. 스스로 작은 흠결이라도 없는지 살피지 않고, 또 흠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답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다. 


5.

‘노무현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두고두고 여기저기 따져야할 문제다. 더 크게 이야기해야하는 구조도 있어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그를 향해 비논리적 인신공격이라는 돌을 던졌던 사람들과 매체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이런 돌을 던져야지’, ‘이렇게 던져야 아프지’하고 알려줬던 권력자들은 스스로의 방식이 찌라시 수준에 불과했던 것을 인정해야 한다. TV 예능프로그램의 리얼리티와 연출 사이에서, 연기자도 때론 자성하고 사과를 하지 않던가?

 


계간 <논>, 200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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