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2 17:59 환상

<장화홍련전> | 월간 논


1. <장화홍련전>에서 계모 허씨는 혐오스러운 외모에 대한 묘사부터 등장한다.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가진 악녀인 팜므 파탈(femme fatale)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악한 사람이 못생기기까지 한 것이다. 사실 우리 고전 소설에는 악한 여성 인물의 외모는 마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처럼 단순하게 구별된다. 놀부의 부인, 심 봉사의 두 번째 부인인 뺑덕어멈, 콩쥐의 계모와 팥쥐 역시 못생긴 외모로 이미 선과 악을 구별한다. 왜 악한 여성의 외모를 그렇게 그렸을까? 또 어떤 의도 때문에 그녀들을 희생물로 삼는 것일까? 위에 예로 든 <흥부전>, <심청전>, <콩쥐팥쥐전>의 경우와 <장화홍련전>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2. 장화와 홍련의 아버지 배 좌수는 지극히 못난 사람이다. 대를 잇기 위해 새로 부인을 얻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새 어머니와 장화와 홍련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배 좌수다. 장화가 임신한 뒤 유산했다는 모함에 아무런 의심도 못하고 빠진 것도 멍청한 짓이다. 심지어 딸의 살해에 동의한다. 그런데 장화와 홍련은 아버지 배 좌수에게는 죄가 없다며 용서해 달라고 하고, 실재 무죄 훈방된다. 제 역할을 못한 아버지는 죄가 없다는 셈이다. 왜 장화와 홍련은 ‘아버지’를 감쌀까? 누명을 벗을 방법은 없었는가?

3. 허씨는 ‘처녀의 임신과 유산’이라는 음모를 선택한다. 처녀의 임신은 배 좌수가 딸의 살해에 동의할 만큼 돌이킬 수 없는 수치였던 셈이다. 당사자인 장화와는 한 마디 대화조차 없었다. 장화에게는 실재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처녀의 임신, 그리고 유산은 숨겨야 하는 일이고, 창피한 일이며, 경우에 따라 치욕적인 일로 여긴다. 말 못하고 숨 죽여야 하는 제 2의 장화들이 도처에 있으며, 어리석은 아버지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장화의 임신이라는 사실관계를 떠나 처녀의 임신이라는 문제로만 국한시켜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오늘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

4. 귀신이 된 장화와 혼령이 직접 원수를 갚거나 오해를 풀어 누명을 벗지 않고 굳이 철산부사를 찾아가 구구절절한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는 이유는 뭘까? 철산부사가 놀라서 줄줄이 죽어나갈뿐더러 동네도 완전히 폐읍이 되가는데도 말이다. 그저 누명을 벗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아버지를 찾아갈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닐까? 수많은 전설 중에는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 국가나 또 다른 권력의 힘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많다. 귀신이 나오니 공포물로 다루어지거나 <전설의 고향>이라는 옛 TV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귀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일이 잦다. 왜 귀신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대리인을 동원할까?

posted by 빨간수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