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30 21:31
초월
때늦게도 규승이 형의 시집을 포스팅한다.
요즘 국수를 많이 먹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그냥 시집을 넘겨 읽다가 생각이 나서...
실은 책을 받은 날과 그 다음 날 후루룩하고 '삶은 국수 면발' 넘기듯이 읽어보고 말았는데...
난, 시인이란 사람들을 정말 존경한다.(물론 모든 시인은 아니다. 아니다! 많은 시인들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감탄한 적이 너무 많고,
내 삶은 '서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누군가의 말도 떠오르고,
나의 인생과 역사가 거룩해 보이는 '시인의 삶'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세상을 마구 표나게 조롱하는 코믹한 글을 좋아하는 나는 워낙 시라는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래에 시 한 편을 옮겨 타이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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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마룻바닥에 풀려 있는
햇살이 가물거리는 늦은 오후
국수를 말기 위해
멸치를 넣고 국물을 우려낸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는 멸치
구수한 국물냄새가 뱃속으로 파고든다
멸치를 한 마리 건진다
퉁퉁 불은 몸뚱어리가 터질 둣하다
맛을 빼앗긴 멸치를 씹으면서
문득,
멸치 같은 나이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어떤 뜨거움 속에 담겼다 나왔을까
은빛 물결을 퍼뜨리며 바다를 유영하는
멸치 떼의 까마득한 시간을 퍼올려
삶은 면발 위에 붓는다
냄비 바닥에 남은 멸치들이 막막한 시간들을 견디고 있다
퉁퉁 불은 시간들을
입에 넣고 씹는다
혀끝은 지난 시간의 맛을 알지 못한다
그 시간을 건너는 동안
바다는 나를 물들이지 못했다
나는 채우지도 못하고 어느새 잃어버릴 나이를 맞는다
죽음은 너무 멀고
욕망의 시간은 가까우나 돌아갈 수 없다
차기도 전에 물이 빠지는 깨진 독처럼
내 몸은 내 나이에 헐겁다
야위어가는 몸
돌아앉은 그녀에게서 파꽃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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