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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1 전쟁과 평화

전쟁과 평화

이성 2008/11/21 11:48

전쟁과 평화

 

0.

지금 우리가 평화롭기 때문일까? 전쟁은 실감나지 않는 실체다. 엄청난 화력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휴전 상태의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전쟁에 대해 무덤덤하다. 혹시 북한과 전쟁을 다시 치르게 될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서 그친다. 이라크에서의 김선일 씨의 죽음이나, 아프가니스탄 무장 단체에 납치됐었고 생명을 잃은 샘물교회 사람들의 사건처럼 전쟁이나 테러에 대한 분노나 공포는 존재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미군에 의한 이라크 민간인 오폭으로 팔다리가 잘려나간 어린 아이의 모습이나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의 자살폭탄테러로 인해 엉망이 된 거리의 모습 등은 그보다 더 찰나적이다. 문제는 전쟁에 대해 무덤덤한 만큼 평화에 대해서도 특별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1.

나는 군 생활의 일부를 연천의 GOP에서 보냈다. 흔히 ‘최전방 철책’이라는 부르는 곳이다. 군인을 포함하여 사람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쥐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못하게’하는 일을 주 임무로 삼는 곳이다. 연말이 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털 달린 두툼한 점퍼를 입고 세퍼트와 함께 철조망을 따라 순찰하거나 한쪽 손에 소총을 들고 높은 초소에 우뚝 서서 해지는 북녘을 바라보는 바로 그곳 말이다.

칼바람 부는 한겨울 밤,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이 쩌렁쩌렁 울리는 그곳 철책 앞에 서면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저 어둠 건너에도 나와 같이 소총과 실탄, 그리고 수류탄을 들고 있는 북한군이 있겠지라는 생각도 들고, 꼭 전쟁이 아니라도 혹시라도 우발적인 교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철책은 조용했다. 대남방송도 대북방송도 없는 시간대에는 더욱 조용했다.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순찰일지와 근무일지에는 ‘특이사항 없음’과 ‘근무 중 이상 무’만이 가득했다. 화창한 봄날에는 ‘평화롭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아, 이 무슨 넌센스인가.

내가 가진 소총은 물론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무기고에 가득한 탄약과 폭탄들은 도대체 무엇이며, 나를 비롯한 많은 군인들이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어 서있는 건 무엇이며, 이렇게 된 본래의 구조는 어디에서 어떻게, 왜 만들어진 것인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 당시 나에겐 그리 심각한 과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이었고, 조용한 철책은 도리어 잔혹한 전쟁과 그 구조에 대해 무덤덤하게 만들었다.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진짜 평화’가 아닌 ‘거짓 평화’에 익숙하여, 또는 내가 처한 현실의 안락함에 기대어 전쟁과 테러에 대해서는 그저 ‘나쁜 것’이거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물론 당신에게도. 

2.

앞서 말한 것처럼 가끔씩 자극은 받는다.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가 이슬람 무장 단체에 의해 납치되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텔레비전에 나올 때, 그리고 결국 참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테러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분노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도 이라크에는 자이툰 부대가 그대로 있다. 만약 이라크에서 철수한다면 김선일 씨의 죽음과는 아무 인과 관계 없는 철군일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아주 잠깐 분노를 가졌을 뿐, 우리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인 이라크에 있는 무장 단체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민간인 인질을 동원한 매우 치사하지만 동시에 매우 효과적인 전략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전과를 거두었다.

그럼, 1999년과 2002년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 해군과의 교전은 당시 어떤 느낌을 주었는가? 그 때 전쟁이나 포성과 총성에 대하여 공포를 느꼈는가? 아니면 ‘우리 해군이 이겼다’라는 승리에 더 집착했는가? 우리는 정말 김선일 씨의 죽음과 서해 교전을 통해 전쟁이나 테러를 경험한 것인가? 결국 그렇다면 그 반대에 있는 평화를 생각한다는 일은 완전히 다른 곳의 이야기일 것이다. 

3.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청일전쟁(1894-1895)과 그 뒤의 러일전쟁(1904-1905)이다. 동학농민운동을 막아 조선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청과 일본 두 나라의 군대가 모두 조선의 영토로 들어와서는 서로 전쟁을 벌였고, 승전한 일본은 조선을 자신의 세력 아래 두었다. 조선을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실은 통치하길 원한 것이다. 중국의 동북지방을 거쳐 조선에도 세력을 미치려하던 러시아는 반대로 대륙으로 진출하려던 일본과 부딪혔고 일본이 다시 승리했다. 일본은 전쟁의 결과로 러시아가 침략했던 요동반도를 포함한 중국의 동북지방을 자신의 영토로 삼았고, 조선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게 뭔가? 조선과 중국의 동북지방을 두고 왜 다른 나라끼리 전쟁을 벌였는가? 당시 일본은 조선인과 중국인을 지도하여 아시아를 침략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의 일본인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내무성의 감시 아래에 있던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그들에게 전달되던 내용은 그게 모두였고, 조선과 중국 사람들이 왜 일본인을 미워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약한 조선과 중국을 침략한 자신의 과오는 보이지도 않고, 유럽 열강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는 말만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을 외세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중세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와 유럽 국가들처럼 발전된 나라로 만들겠다는 사상가와 혁명가들이 조선과 일본에 있었고 그들에 의한 얼마간의 근대화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자국의 세력을 넓히려는 욕망에 가득한 정치가와 군인들을 이기지 못했다. 군국주의에 빠져 스스로가 저지르고 있는 침략과 그 결과는 보지 도 않았고,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1)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면서 전쟁의 규모는 훨씬 커졌고, 그 전쟁의 참혹한 결과도 더 커졌다. 하지만 전쟁의 원인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크고 힘이 센 나라가 작고 힘없는 나라를 도와주는 일은 마땅한 일이며 아름다운 일이나 진정으로 작은 나라에게 이로움을 주는 일인가는 따져보아야 한다. 돕겠다면서 뒤통수를 치고 자국의 이익만 취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며, 그 게 바로 전쟁이 발발하는 변하지 않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4.

그러면, 왜 상대를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끼어들면서 실은 자신의 세력 하에 상대를 두려고 하는 것일까? 자신의 크기를 키워 더 큰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절박한 지경에 이른 상대가 존재하는데 그런 것은 일단 무시한다. 일본은 조선과 중국, 그리고 인도차이나에 이르기까지 침략 전쟁을 벌이면서 강제 징병과 강제 노역, 군대를 중심으로 한 경제 체제의 운영과 정책의 개발을 계속 이어갔는데 그런 과정에서 혹사당하거나 처참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을 자신과 같은 레벨에 위치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내선일체라고 생각했다면, 형제를 노예처럼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너무나도 영화 같았고 그래서 더 끔찍했던 9.11 테러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속되는 유혈 공방에 대해서도 알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거의 일치할 만큼 오랜 시간 동안의 불공평한 관계와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현대로 오면 올수록 서로에 대한 불신을 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더 많은 불신이 쌓이고 있고 그것으로 인한 갈등은 더 참혹하고 잔인한 전쟁과 테러로 커져가고 있다. 힘 센 국가는 ‘저들은 악마다’라고 자기 입맛에 맞춰 해석하고 자기 멋대로 단정을 지어버린다. 힘없는 사람들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극단적인 보복논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부시는 9.11 이후 이라크 전쟁의 개전을 선언하면서 ‘억압된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며 막강한 군사력으로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사담 후세인을 체포해 교수형 시켰지만, 절박한 지경에 이른 이라크 사람들의 삶은 나아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 사람들은 미군에 의해 해방됐다기 보다 점령당했다고 보인다.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갈등2)이 더 높아지고 그로 인한 테러가 이어지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테러와의 전쟁’이 다시 테러를 부르고, 미국은 그 테러와 다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5.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보자. 다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거짓 평화’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려고 한다. 일단 먼저 전제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병영국가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의 경험과 분단이라는 실재, 그리고 박정희가 탱크와 총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한동안 군인들이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가 최고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들이 사람들을 마구 눌러대며 만들어진 군대, 곧 병영에서 필요한 강제적이고 집단적인 행동과 사고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우리는 마치 바짝 군기가 든 신병처럼 파닥파닥 움직이고 긴 호흡의 사고보단 단선적인 행동을 서로에게 요구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첫째, 겉으로 보이는 쉬운 예를 찾아보면 이젠 다행히 산업 ‘전사’라고까지는 부르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들은 출근 ‘전쟁’을 해야 하고 자식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합격 ‘전략’을 세워야 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다른 방법이 많이 있는데 회사나 단체 중에는 여름이면 해병대나 특전사의 군인들이 받는 훈련을 본뜬 특수부대훈련 체험 캠프를 다녀오는 곳도 있다. 심지어는 가족끼리 자진해서 가기도 한다.

둘째,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는 군대식 사고와 행동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실제 군사적 의미 테두리 안에서 봐도 결코 평화롭지 못하다. 휴전과 분단이라는 절대적인 상황, 모두에게 부여된 의무인 군복무와 막대한 국방비 지출, 상당한 면적의 군사 시설과 훈련장 그리고 그곳이 안고 있는 환경문제,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각종 안보 문제, 주한 미군의 주둔, 안보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각종 경제 수치,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 등의 사안들은 우리가 병영에 살고 있다는 실체적인 증거들이다.

셋째, 가장 핵심적인 사항인데 우리 역시 과거의 일본이나 지금의 미국처럼 작고 힘없는 나라를 도와준다고 하면서도 진정으로 작은 나라에게 이로움을 주는 일을 하지 않고, 내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우리와 다른 상대에 대하여 폭넓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평함보다는 내 편의에 의하여 이미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대단히 위선적이게 말이다. 이런 세 가지 점은 우리가 평화롭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가짜 평화, 거짓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6.

하여 우리는 거짓 평화를 누리기에 국익의 이름으로 이라크에 파병을 할 수 있었다. 이라크전의 명분이 워낙 약하고 그 전쟁의 결과가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 미국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우선한 것이다. 용서과 화해, 그리고 평안이라는 진짜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조금 다행스러운 것은 경계를 위해 필요한 전투병을 최소화하고 의무 부대와 공병 부대를 파병했다는 점이다. 다소 치사하거나 비겁해 보이기도 하고 점령군이라는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보다 의미를 둘 수 있는 부분은 파병 결정의 선후에서 이익이 얼마냐가 아니라 도덕에 대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논쟁이 상당한 힘을 가지고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거짓 평화에 대한 반성이 있었기에 반대가 가능했을 것이다. 베트남전 때와 비교해보면 우린 그만큼 평화에 가까이 간 셈이다.

몇 해 전, 나가사키3)에 여행을 갔을 때 원폭투하지점에 조성된 평화공원과 기념관을 들렀었다. 기념관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며 나왔을 때 일행 한 사람이 다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들은 평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반성은 찾을 수 없다.”고 말했었다. 평화의 가치가 이상적이고 뜬 구름 같지만 그 시작은 간명하다.


주석))

1) 한편, 우리 모습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조선의 최고 권력자들은 어땠는가? 외세 사이에서 엄정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내어 조선의 이익을 지키려고 했는가? 아니면 외세 중 어느 한편에 서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애썼는가? 보다 단순하게, 동학농민운동 당시 위정자들이 각각 청과 일본에게 ‘도와줘, 지금 조선에는 당신의 힘이 필요해’라고 메시지를 ‘전혀’ 보내지 않았는데, 그들이 자진해서 ‘파병’한 것일까? 또 국권 상실시기 조선의 최고 권력자들이 큰 나라인 일본과 러시아가 작은 나라인 우리를 순수하게 도와주려는 의도만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하고 ‘플리즈, 헬프 미!’라고 외쳤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2)슬람교 전체로 볼 때는 시아파가 소수파이나 이라크의 경우는 소수인 수니파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이 다수인 시아파를 통치했었다. 현재는 이란과 같이 시아파가 다수이며 정권도 쥐고 있으며 권력의 이동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3) 나가사키는 1945년 8월 9일, 미군의 원자폭탄으로 시 중심부가 대부분 파괴된 곳이다. 피해의 정도는 히로시마에 비해 덜했다고는 하지만 3만 9,000명이 즉사했으며 2만 5,000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일본의 항복과 우리의 해방이 이어질 수 있었지만 당시 미군이 원폭을 꼭 사용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비판이 많다.



* <논>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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